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16

빌립보서,
감옥에서 부른
기쁨의 노래

쇠사슬에 묶인 사도가
"기뻐하라"고 거듭 말한 편지

빌립보서 1–4장
여는 글

빌립보서는 감옥에서 쓴 편지예요. 바울은 군인에게 사슬로 묶여 있었고, 재판 결과에 따라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는 처지였어요. 그런데 이 짧은 네 장짜리 편지에 "기쁨"과 "기뻐하다"라는 말이 열여섯 번이나 나와요. 감옥에서 쓴 편지가 바울의 편지 가운데 가장 밝은 편지라니, 참 신기하죠.

그 밝은 편지 속에 재밌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어요. 유럽 첫 교회를 이룬 세 사람, 쇠사슬 덕분에 복음을 듣게 된 황제의 경호대, 이사야서에서 가져온 초대교회의 찬송, 로마 식민지 사람들의 자부심, 목숨을 걸고 판돈처럼 던진 한 사람, 그리고 이름과 달리 사이가 나빴던 두 여인까지요. 그 흔적을 따라가면 한 분이 보여요.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신 그리스도 예수예요(2:7).

1부

빌립보서는 어떤 책일까?

유럽의 첫 교회에 보낸 감사와 기쁨의 편지

빌립보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고 건너가 세운 유럽의 첫 교회예요(행 16:9-40). 그 뒤로 빌립보 교회는 바울을 계속 후원했어요.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자 에바브로디도 편에 선물을 보냈고(4:18), 바울은 그 고마움을 담아 이 편지를 썼어요. 로마에 갇혀 있던 주후 60–62년 무렵으로 보는 경우가 많아요.

"빌립보"라는 이름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마게도냐 왕 필립포스 2세가 주전 356년 무렵 이 도시를 새로 세우고 자기 이름을 붙였어요.
로마의 식민지주전 42년 이곳에서 로마 내전의 큰 전투가 벌어진 뒤, 로마는 제대 군인들을 이주시켜 도시를 "로마의 식민지"로 만들었어요(행 16:12).

※ 바울이 이 편지를 쓴 감옥이 로마인지, 에베소나 가이사랴인지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나뉘어요.

빌립보서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기쁨의 편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 슬픈 상황 속에서 기쁨을 가장 많이 말한 편지예요.
2
감옥에서 쓴 편지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1:13).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옥중서신이라 불러요.
3
초대교회의 찬송
2장 6–11절은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시고 높아지신 이야기를 노래처럼 담고 있어요. 신약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리스도 찬가 가운데 하나예요.
4
선물에 대한 감사 편지
4장 10–20절은 빌립보 교회가 보낸 후원에 대한 감사예요. 바울은 그 선물을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불러요(4:18).
5
책망이 거의 없는 편지
잘못을 꾸짖는 대목이 거의 없어요. 굳이 꼽자면 서로 다투던 두 여인에게 한마음을 품으라고 권한 것 정도예요(4:2).

빌립보서의 중심에는 이 고백이 있어요.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1:21). 바울의 기쁨은 형편이 좋아서 생긴 기쁨이 아니었어요.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전부였기 때문에 생긴 기쁨이에요. 그리고 바울은 그 그리스도의 마음을 우리에게도 권해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2:5).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한밤의 찬송부터 두 여인의 화해까지, 기쁨의 편지에 숨은 이야기들

1

유럽 첫 교회를 이룬
전혀 다른 세 사람

사도행전 16:12-34 · 빌립보서 1:3-5

빌립보에 도착한 바울은 안식일에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갔어요(행 16:13). 회당을 찾아가던 평소와 달랐죠. 유대인이 적어서 이 도시에 회당이 없었던 것으로 보여요. 그 강가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였어요(16:14). 자주색 옷감은 아주 비싼 물건이었으니, 루디아는 꽤 넉넉한 사업가였을 거예요.

두 번째 사람은 거리에서 만난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이었어요(16:16). 주인들에게 큰돈을 벌어다 주던, 사람 취급도 제대로 못 받던 소녀였죠.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자, 돈줄이 끊긴 주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매를 때리고 감옥에 가뒀어요.

그리고 세 번째 사람이 그 감옥의 간수예요.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16:25). 지진으로 옥문이 열리자 자결하려던 간수에게 바울이 외쳤어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16:31). 부유한 사업가, 버림받은 여종, 로마 제국의 공무원. 이렇게 다른 세 사람이 유럽 첫 교회의 첫 식구였어요. 그러니 바울이 감옥에서 이 교회를 떠올릴 때마다 기쁨이 넘친 것도 당연해요(빌 1:3-4).

※ 빌립보에 회당이 없었다는 것은 "기도할 곳"을 강가에서 찾았다는 본문을 보고 추정하는 거예요. 여종이 그 뒤 교회의 식구가 되었는지는 성경에 나오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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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을 한 식탁에 모으시는 예수님을 찬양하며, 우리 교회의 다양한 얼굴들을 감사로 바라봅니다.
2

도망갈 수 없는 청중,
황제의 경호대

빌립보서 1:12-18 · 4:22 · 사도행전 28:16, 30-31

로마에서 바울은 셋집에 머물면서도 늘 군인 한 명에게 사슬로 묶여 있었어요(행 28:16, 20). 그런데 바울은 감옥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해요.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1:12).

어떻게요?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1:13). 바울을 지키는 군인은 몇 시간마다 교대했어요. 그러니 날마다 새로운 군인이 바울 옆에 사슬로 묶여서, 바울이 손님들과 나누는 복음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들어야 했어요. 😄 도망갈 수 없는 청중이었던 거예요.

그 결과는 편지 끝 인사에서 드러나요.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4:22). 황제의 집안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생긴 거예요. 로마를 다스리던 황제의 바로 곁에서, 쇠사슬에 묶인 사람이 전한 복음이 자라고 있었어요.

※ "가이사의 집 사람들"은 황제의 가족이 아니라 황제의 집안 일을 맡은 노예와 해방 노예, 관리들을 가리키는 말로 봐요. 군인들이 교대로 묶였다는 설명은 당시 관행을 바탕으로 한 해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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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을 묶는 형편이 도리어 복음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믿고, 오늘 내 곁에 앉은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보여 줍니다.
3

이사야서에서 가져온
초대교회의 찬송

빌립보서 2:5-11 · 이사야 45:22-23 · 창세기 3:5
첫 사람 아담
"하나님과 같이 되어"(창 3:5) 하는 말에 움켜쥐려다 떨어졌어요.
VS
그리스도 예수
하나님과 동등하시지만 움켜쥐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우셨어요.

2장 6–11절은 리듬이 있는 노래처럼 짜여 있어요.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초대교회가 예배 때 부르던 찬송을 바울이 옮겨 적었거나, 바울이 찬송처럼 지었다고 봐요. 모양은 V자예요.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이 → 자기를 비워 종이 되시고 → 사람이 되시고 → 죽기까지 복종하시고 → 가장 낮은 십자가까지 내려가셨어요. 그리고 거기서부터 하나님이 "지극히 높여" 올리셨어요(2:9).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2:6)라는 말은 창세기의 아담을 떠올리게 해요. 아담은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열매를 움켜쥐었다가 모든 것을 잃었어요. 그런데 참으로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님은 그 자리를 붙잡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워" 내려오셨어요(2:7).

노래의 마지막 줄에는 숨은 구약 인용이 있어요.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2:10-11). 이건 이사야 45장의 말씀이에요. 거기서 하나님은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모든 무릎이 내게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사 45:22-23) 하셨어요.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드리던 이 고백을, 초대교회는 예수님께 드렸어요. 예수님이 바로 그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에요.

※ 2:6-11이 바울 이전부터 있던 찬송인지, 바울이 직접 지은 것인지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나뉘어요. 아담과의 대조도 많은 주석가들이 따르는 해석이지만 본문이 직접 아담을 언급하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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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켜쥐려는 마음 대신 자기를 비우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그분 앞에 무릎 꿇는 자리로 오늘 내려갑니다.
4

로마 식민지 사람들에게
말한 하늘 시민권

빌립보서 1:27 · 3:20-21 · 사도행전 16:20-21, 37-39

빌립보 사람들은 자기들이 로마 시민이라는 걸 무척 자랑스러워했어요.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마게도냐 땅에 있었지만, 도시는 로마법을 따르고 로마식으로 다스려졌거든요. 바울을 고발할 때도 사람들은 "로마 사람인 우리"(행 16:21)이라고 외쳤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매 맞고 갇힌 바울도 로마 시민이었어요. 관리들이 그 사실을 듣고 두려워서 직접 찾아와 달래며 내보냈죠(행 16:37-39). 😄

바울은 그 자부심을 알고 이렇게 써요.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3:20). 빌립보가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로마의 식민지였던 것처럼, 교회는 이 땅에 세워진 하늘나라의 식민지라는 거예요. 몸은 빌립보에 살지만, 본국은 하늘이에요.

그래서 바울은 앞에서 이렇게 권했어요.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1:27). 원어로는 "시민답게 살라"는 뜻이에요. 로마 시민이 로마법을 따라 살듯이, 하늘 시민은 하늘 왕의 법을 따라 살아요. 그리고 그 본국에서 오실 분을 기다려요.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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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살지만 내 본국은 하늘임을 기억하며, 오실 주 예수님께 어울리는 시민답게 오늘을 삽니다.
5

바울의 장부 정리,
이익 칸과 손해 칸

빌립보서 3:4-14 · 4:15-18
바울의 옛 이익 칸
할례, 이스라엘 족속, 베냐민 지파,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 바리새인, 열심, 흠 없는 의. 일곱 줄의 자랑.
VS
그리스도를 만난 뒤
모두 손해 칸으로 옮기고, 한 줄만 남겼어요. "그리스도를 얻고"

3장에서 바울은 자기 이력서를 꺼내요.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3:5-6). 유대인 사회에서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경력이에요.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의 첫 왕 사울이 나온 지파인데, 바울의 원래 이름도 사울이었어요.

그런데 바울은 이걸 장부 정리하듯 말해요.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3:7). 이익 칸에 적혀 있던 것을 전부 손해 칸으로 옮긴 거예요. 그리고 한 걸음 더 나가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3:8). 여기 쓰인 단어는 꽤 거친 말이에요. 😄 점잖은 바울이 이런 단어까지 쓴 걸 보면, 예수님을 아는 것이 그만큼 비교할 수 없이 귀했던 거예요.

재밌게도 편지 끝에서도 바울은 장부 말투를 써요. 빌립보 교회만이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했다고 하고(4:15), 자기가 바라는 건 선물이 아니라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라고 해요(4:17). 너희가 드린 것이 하나님의 장부에 너희 앞으로 쌓이고 있다는 거예요.

※ 4:15-17을 당시 상거래 장부의 말투로 읽는 것은 여러 주석가들의 해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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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부의 이익 칸에 무엇을 적어 두고 붙잡고 있는지 돌아보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가장 귀한 것으로 삼습니다.
6

목숨을 판돈처럼 던진
에바브로디도

빌립보서 2:25-30 · 4:18

빌립보 교회가 바울에게 선물을 전하려고 보낸 사람이 에바브로디도예요. 이름에 재밌는 뿌리가 있어요. "에바브로디도"는 그리스 신화의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에서 나온 이름이에요. 아마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 흔한 이름을 받았을 거예요. 그런 그가 이제는 바울이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2:25)라고 부르는 사람이 됐어요.

그런데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을 섬기다가 큰 병에 걸렸어요.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2:27). 바울은 그를 이렇게 칭찬해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2:30). 이 말은 원래 노름판에서 판돈을 거는 것을 가리키던 말이에요. 에바브로디도는 자기 목숨을 판돈처럼 복음에 걸었던 거예요.

그리고 에바브로디도에게는 따뜻한 마음도 있었어요. 자기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교회가 걱정할까 봐 오히려 "심히 근심"했거든요(2:26). 😄 죽을 뻔한 사람이 남 걱정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바울은 그를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2:29) 하며 돌려보내요. 이 편지를 빌립보까지 들고 간 사람도 에바브로디도였을 거예요.

※ 훗날 알렉산드리아 교회에서 전염병 환자와 죽은 이들을 돌보던 사람들을 "파라볼라노이"라고 불렀는데, 이 이름이 2:30의 이 단어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설명이 있어요. 두 말의 관계는 확실하지 않아요.

돌아보기
안전한 자리만 찾기보다,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내 시간과 마음을 기꺼이 거는 사람이 되기를 구합니다.
7

이름과 달리
사이가 나빴던 두 여인

빌립보서 2:2-5 · 4:1-7
유오디아
이름의 뜻은 "좋은 길", 순탄한 길이라는 뜻이에요.
VS
순두게
이름의 뜻은 "좋은 만남", 행운이라는 뜻이에요.

칭찬이 가득한 빌립보서에도 딱 한 군데 걱정이 나와요.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4:2). 이름의 뜻을 알면 웃음이 나요. "좋은 길"과 "좋은 만남"이 서로 사이가 틀어진 거예요. 😄 이름대로라면 참 잘 어울렸을 두 사람인데 말이에요.

그런데 바울은 두 사람을 깎아내리지 않아요. 오히려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이라고,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4:3)라고 불러요. 빌립보 교회는 강가에서 여인들과 함께 시작된 교회였어요(행 16:13). 이 두 사람도 교회를 세우는 데 앞장선 일꾼이었을 거예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끼리 부딪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같나 봐요.

숨은 연결고리는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말이에요. 이건 2장에서 이미 쓴 동사예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2:5). 두 사람이 서로 같은 마음이 되는 길은, 서로의 의견을 억지로 맞추는 게 아니라 둘 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이에요. 자기를 비우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좋은 길과 좋은 만남이 다시 이름값을 하게 돼요. 그리고 바로 다음 절이 이어져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4:4).

※ 이름의 뜻은 어원을 풀이한 것이고, 두 사람이 무엇 때문에 다퉜는지는 성경에 나오지 않아요.

돌아보기
서운한 사람과 억지로 의견을 맞추기보다, 둘 다 자기를 비우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도록 먼저 무릎 꿇습니다.
맺는 글
쇠사슬도 막지 못한 기쁨,
그 기쁨의 이름은 그리스도

빌립보서는 감옥에서 쓴 편지인데도 가장 밝은 편지예요. 한밤의 감옥에서 찬송하던 바울은 몇 해 뒤 또 다른 감옥에서 "기뻐하라"고 써요. 군인에게 묶여 있어도, 경쟁자들이 시기로 복음을 전해도, 죽을지 살지 몰라도, 바울은 기뻐할 이유를 놓치지 않아요.

그 비밀은 4장에 있어요.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4:11).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3)는 사실 이 말 바로 뒤에 나와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뜻이기 전에, 배부를 때도 배고플 때도 그리스도 한 분이면 충분하다는 고백이에요. 바울의 기쁨은 형편에서 오지 않았어요. 기쁨의 이름은 그리스도였어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4:4)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